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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조각의 미래 #6 2024/10/14

 

안녕하세요. 알피지가 취미인 여러분들!

 

오늘은 현재 개발 중인 시스템의 개발 의도와

그리고 그 생각과 의도가 어떻게 규칙에 실제로 적용되는지를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꼭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시스템이기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과 방식은 아닙니다.

 

그 의도라는 게 '모두가 쉽게 이 시스템이 의도하는 방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사실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목적이죠.

 

'쉽게 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알피지 시스템이 그러고 있고 그러려고 하고 있지 않나? 싶으실 텐데요.

 

정보를 펼쳐놓고 그러기를 희망하는 것과 그걸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죠.

 

 

- '모두가 쉽게 이 시스템이 의도하는 방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저희가 생각하는 이 규칙을 접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이미 알피지에 익숙하며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변용해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이미 창작 활동 중이며 어떤 장르적 문법과 연출에 능숙하거나 혹은 능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선천적으로 이야기 만드는 걸 즐기며 주도적이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 수 있는 사람

 

이런 분들이 아닙니다.

 

저희의 기준은

 

흥미를 가지고 알피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사람

주말에 어렵게 낸 시간이 누군가의 이해하기 힘든 말들로 채워지고 끝나길 원하지 않는 사람

 

이런 분들입니다.

 

즐거움에도 어떤 저점과 고점이 있다면 그 저점을 높이는 방식이 저희 출판사와 규칙 디자인이 그리고 앞으로도 알피지 규칙들을 제작할 저희 출판사가 고민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하여 저점을 높이는 건 누군가의 것을 뺏어서 채워나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와 함께하는 놀이인 알피지라면 말이죠.

 

 

- 혼란과 기준선

 

새로운 무언가를 접할 때는 전달해야 하는 정보량에 의해

다른 여러 시스템과 장르를 접해보았다 해도 일정 기간의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 혼란의 기간이 길어지면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죠.

 

혼란의 시기를 즐기는 방법도 존재하지만, 이는 오늘의 주제와 맞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혼란의 시기를 줄이는 방법으론 서로의 의견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전달한다가 현재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이란 게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알피지에서 충분한 시간은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요? 서로를 이해하고 원하는 걸 전달하는 시간 말입니다.

 

서로가 이미 잘 아는 사이라면 좀 줄어들 수 있겠죠. 어쩌면 잘 아는 사이라서 오히려 평생이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충분한 대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상적으로 동등한 외부의 압력이 전혀 없다면 좋은 방식이긴 한데,

 

만일 그렇다 해도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은 시간이 정말 충분할 때만 가능합니다.

 

 

저희는 개발 중인 알피지 시스템이 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고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름을 정해주는 방식이지요.

 

 

Q : 이름을 정해준다고요?

 

이름은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가령 '수재' 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세세한 부분은 달라도 비슷할 것이라 봅니다.

 

이런 작명은 플레이 시작 직후에 공개되어도 이해가 쉽고

플레이 전에 공개되어도 전반적인 이미지를 쉽게 떠올려 정보의 전달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바로 그걸 시스템이 정해주는 겁니다.

 

 

Q : 이름을 자율적으로 정하지 못한다고요?

 

보통의 이름들은 본인에게만 의미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을 스스로 정한다 부터가 시간을 많이 사용하고 추가적으로 의미를 정하고 전달하기까지 시간을 더 소모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더 좋은 생각이 난다면 그걸 조정해야 하는 시간이 또 필요하죠.

 

충분한 대화는 충분한 시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충분한 인내심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이름을 정해주는 이 방식은 충분하지 않은 시간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알피지를 하시는 일부 분들이 죄악시 하는 자유와 상상력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라베스크는 종교적 제약 안에서 탄생한 장식 무늬 양식으로 도안화를 통해 기하학무늬를 배합시킨 방식을 사용합니다.

 

제약 안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방식이죠.

 

 

어떤 이들은 무한한 자유 속에서 멋진 상상력이 나온다 주장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게 알피지라고 말입니다.

 

 

대화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면 물론 좋겠죠.

 

만일 정말 가능하다면 제약 없는 무한한 시간을 사용한다고 해서 의견 통합이, 더 멋진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어떤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건 자유라는 의미를 오해석해 알피지에 억지로 끼워 맞춘 몰이해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정한다는 건 의미 부여에 있어서도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다양함이 무한한 범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미래'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이 드시나요?

 

엄연히 따지자면 이것도 제약에 속해있는 질문입니다.

 

 

네 번째 조각의 미래 #4, #5에서 말한 관념화는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